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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교양/역사

마케도니아의 왕자에서 세계정복자로 떠오른 알렉산더 대왕

by 지식 발전소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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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그리스 북방의 작은 왕국 마케도니아에서 한 젊은 왕자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바로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년)입니다. 그는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뒤를 이어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른 뒤, 약 10년간의 짧은 재위 기간 동안 전 그리스를 통일하고 동방으로 원정을 떠나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필리포스 2세가 진멸한 페르시아 제국의 재건을 위해 원정에 나선 것이지요. 젊은 알렉산더는 불과 2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소 아시아를 거쳐 페르시아 본토를 제압한 뒤,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 서북부까지 진격했습니다. 단 10년 만에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을 정복한 셈이었지요.

 

당대 최강이던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이수스 전투(기원전 333년), 가우가멜라 전투(기원전 331년) 등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함락시키는 등 신속하고 화려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용맹한 무장이자 탁월한 전략가로서 알렉산더의 능력은 압도적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알렉산더의 진정한 위대함은 단순히 정복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정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동서 문명의 활발한 교류를 촉진했다는 점에 더 큰 의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새로운 문화적 융합이 꽃피게 되었으니, 이른바 **'헬레니즘'**의 등장이었습니다.

동서양을 관통하며 그리스 문물을 전파한 알렉산더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문명과 문화의 전파라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는 정복지마다 그리스식 도시(폴리스)들을 건설하고, 그리스의 제도와 관습을 이식시켜 나갔습니다. 원정 기간 동안 무려 70여 개의 도시들이 새로 세워지거나 재건되었고, 이 가운데는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을 딴 도시만 해도 2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고도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 것 역시 페르시아 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그리스 문명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페르시아 왕을 '대왕(Great King)'으로 칭하고 페르시아 귀족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등, 제국 내 민족들을 포용하려 한 노력도 엿보입니다.

 

실제로 알렉산더는 정복지의 주민들을 그리스적 방식으로 통합하고자 했습니다. 그리스인과 현지인 사이의 결혼을 장려하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로 교육시키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른바 '혼혈아 정책'이라 불리는 이 조치는 제국의 문화적 융합을 위한 전략적 방안이기도 했던 것이죠.

 

더욱이 알렉산더는 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역사가 칼리스테네스를 대동하여 여러 민족의 역사와 지리, 문화를 상세히 기록하게 했습니다. 원정 과정에서 얻은 각종 동·식물 표본이나 미술품 등도 수집하여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하지요. 이는 단순히 이국적 사물에 대한 호기심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발견'의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와 오리엔트의 문화 교류를 적극 주도하면서 제국 내에 다양한 문물이 공존하는 토대를 닦았습니다. 비록 동방원정의 대부분이 군사적 정복 활동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종 문화 간의 접촉과 소통을 추동했다는 점에서 문명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에 의해 꽃핀 헬레니즘 문화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 중이던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급서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서른세 살이었습니다. 너무도 이른 죽음에 제국은 큰 혼란에 빠졌고, 결국 그의 부하들에 의해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고 말았지요. 그러나 이들 '후계자(Diadochi)' 왕국들은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그리스-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새로운 '헬레니즘' 문명을 꽃피워 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국가로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메소포타미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각기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펠라 등을 수도로 삼아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세운 알렉산드리아는 문화예술과 학문의 중심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는 무세이온이라는 학술 도서관을 설립하고 각국의 학자들을 초빙하여 연구를 지원했는데, 여기에는 유명한 수학자 유클리드,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등이 포함되어 있었지요.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장서를 자랑하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건립하여 인류 지식의 집대성을 꿈꾸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 고전 시대와는 사뭇 다른 예술 양식도 발달했습니다. 운명의 변전에 翻弄되는 개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헬레니즘 조각, 풍경화와 정물화가 유행한 헬레니즘 회화, 화려하고 장식적인 건축 양식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동방의 문화와 미의식이 그리스적 전통에 접목되어 탄생한 새로운 예술 세계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동서양의 신앙이 융합되어 나타난 혼합주의 종교들도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의 이시스 숭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숭배 등이 결합되면서 개인의 신비주의적 성향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신앙 형태가 등장한 것이죠. 그리스 고전기의 철학과 합리주의를 대신해 신비주의와 개인주의가 대두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으로 이어진 헬레니즘 문명의 유산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 왕국들은 서로 간의 경쟁과 대립 속에서도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우며 번영을 구가했지만, 기원전 2세기경부터 새로운 강자의 등장으로 하나둘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바로 지중해 서부에서 급부상한 로마였습니다.

 

로마는 기원전 2세기 중반부터 그리스 세계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고, 마케도니아 왕국을 병합한 뒤 점차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해 갔습니다. 기원전 64년에는 셀레우코스 왕조를 멸망시켰고,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 함대를 무찌르면서 마침내 헬레니즘 세계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로마가 헬레니즘 문화를 일방적으로 말살하거나 억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문화적 유산을 적극 흡수하고 계승 발전시켜 나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실제로 로마 제국 전역에 기존의 헬레니즘 도시들이 재건되었고, 그리스 문물과 라틴 전통이 공존하는 독특한 '그레코-로만' 문화가 꽃피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문학과 예술, 철학과 종교 등 거의 모든 문화 분야에서 헬레니즘 정신은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키케로와 같은 로마의 지식인들에게 그리스 고전은 필수불가결한 교양이었고,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황제들은 스스로를 헬레니즘 군주의 후계자로 자처했습니다. 후대의 비잔티움 제국 역시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삼는 등 동로마의 전통을 이어갔지요.

인류 문명사에 길이 남을 헬레니즘 세계의 영향

헬레니즘 시대는 비록 단명했지만 서양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 문명이 보편적 세계 문명으로 승화되는 과정이었고, 유럽 문화의 원형이 탄생하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더불어 처음으로 '세계화'의 물결이 동서양을 휩쓸고 간 역사적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알렉산더 제국이 오래 유지되지 못했고, 진정한 민족적 융합이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 문명을 동방 세계에 전파하고, 상호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공적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남긴 문화적 융합의 전통은 로마 제국을 거쳐 비잔티움 제국, 이슬람 제국으로 이어졌고, 중세 유럽의 문예부흥과 대항해 시대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지중해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광대한 무역망을 구축함으로써 이후 동서양 교역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무엇보다도 헬레니즘 세계는 개인주의와 세계시민주의라는 근대적 가치의 맹아를 배태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거대 제국 속에서 각 민족과 개인의 정체성이 존중받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가 발달했던 것은 후대 인본주의 사상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문물이 교차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보편적 진리에 대한 탐구가 본격화되었던 셈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초국가적 세계화와 다문화 교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민족과 국경의 壁을 넘어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세계, 그 출발점에 알렉산더 대왕이 연 헬레니즘의 장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록 한 시대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헬레니즘 문명이 남긴 정신사적·문화사적 유산은 인류 보편의 가치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동서양의 융합과 조화, 개방성과 포용성의 미학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가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박물관에서는 헬레니즘 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 현란한 금세공품과 우아한 조각상,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 등은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 존엄과 세계시민정신을 일깨우는 듯합니다. 2천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감동을 자아내는 그 위대한 예술혼이야말로, 헬레니즘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닐까요.

 

알렉산더 대왕의 东征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바꾸어 놓은 전환점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헬레니즘의 정신과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인류 보편의 유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찬란한 문명의 빛은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꾸고 이어가야 할 귀중한 '인류애'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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