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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교양/역사

고대 그리스 양대 산맥,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대결

by 지식 발전소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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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국가, 스파르타와 아테네. 여러분은 영화 <트로이>에서 악틱 전사들의 모습을 보고 스파르타의 강인함에 감탄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철학과 예술이 꽃피웠던 아테네의 모습에 동경심을 갖기도 했겠죠. 그런데 이 두 도시국가는 서로 너무나 달랐기에 종종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답니다. 급기야 기원전 431년, 양국의 대결구도는 그리스 세계 전체를 뒤흔드는 전쟁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인데요. 이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양국은 어떤 차이로 인해 충돌하게 된 걸까요? 두 도시국가의 숨겨진 전쟁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군사강국 스파르타 vs 문화강국 아테네

먼저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도시국가로, 군사적인 면모가 매우 강했습니다. 스파르타 사회는 엄격한 규율과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군사국가였죠. 심지어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갓난아기 때부터 군사훈련을 받기 시작했다고 해요. 건강하지 못한 아기는 버려지기까지 했던 잔인한 풍습도 있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철저한 군사교육을 받은 스파르타 군대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력을 자랑했습니다.

 

반면 아테네는 문화와 예술, 철학이 꽃피운 도시였어요. 기원전 5세기 경, 아테네에서는 페리클레스라는 지도자가 나타나 민주정치를 발전시켰죠. 그는 자유와 평등 사상을 기반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했고, 도시국가 내 예술 활동도 지원했습니다. 이 시기 아테네에서는 역사가 헤로도토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 등 뛰어난 인물들이 배출되기도 했죠. 특히 그리스의 황금기를 이끈 걸작 파르테논 신전이 이때 지어졌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두 강대국 사이 불편한 동맹

기원전 5세기 중반, 그리스에는 새로운 위협이 찾아왔어요. 바로 거대제국 페르시아였죠. 페르시아는 역사상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강력한 상대였기에 그리스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에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민족의 생존을 걸고 힘을 합쳐 페르시아에 맞섰고, 기적적으로 그들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죠.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 내에서 아테네의 영향력은 급속히 커져갔어요. 아테네는 강력한 해군력을 앞세워 주변 도시국가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죠. 반면 패권주의를 경계하던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견제하기 위해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합니다. 긴장 관계가 고조되던 상황에서 결국 사소한 영토 분쟁으로 인해 두 국가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어요.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아테네의 패권에 맞선 스파르타의 반격

기원전 431년에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무려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되었어요. 초반 10년의 전쟁에서는 아테네가 강력한 해군력을 앞세워 우세를 점했죠. 아테네는 스파르타군을 수도 안으로 가두고 해상 보급로를 장악하는 전략을 택했어요.

 

하지만 아테네 내부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기원전 430년 발생한 역병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지도자 페리클레스마저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설상가상으로 아테네를 이끌던 또 다른 장군 알키비아데스의 배신으로 전세는 기울기 시작했어요. 그는 정치적 음모로 아테네에서 추방당한 뒤, 스파르타에 망명해 군사정보를 팔아넘기기까지 했죠.

 

전쟁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스파르타가 반격에 나섭니다. 스파르타군은 페르시아 제국과 손잡고 막강한 해군력을 갖추게 되었어요. 기원전 405년, 스파르타의 함대가 아테네 함대를 격파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뒤바뀌었죠. 이듬해인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패전국 아테네에는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어요.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요새를 파괴하고, 해군력을 박탈했죠. 뿐만 아니라 親스파르타 성향의 독재정권을 세워 아테네를 통제하기에 이릅니다. 이로써 그리스의 패권은 스파르타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참혹한 현실, 그 교훈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고대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처참했던 전쟁 중 하나로 꼽혀요. 전쟁은 단순히 군사적 충돌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삶 자체를 파괴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테네 시민 4명 중 1명꼴로 전쟁과 역병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해요. 참혹한 전쟁의 기억은 후대 그리스인들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기도 했죠.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의 전말을 생생히 기록으로 남겼어요. 그의 책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동시에, 인간 본성에 대해 통찰하고 있기도 합니다.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이 단순히 영토 분쟁 때문이 아니라,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팽창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죠. 그의 날카로운 통찰은 현대 국제정치학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답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전쟁이 남기는 참혹한 현실과 깊은 상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패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고, 문명의 중심지였던 아테네가 폐허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나아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의 중요성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서로의 가치관과 문화를 인정하기보다는 패권 싸움에 몰두했기에 비극을 맞은 것이라고 해요. 만약 두 도시국가가 상호 공존의 지혜를 발휘했다면 그리스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전쟁의 시대에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이기도 합니다.

 

 

 

 

한 고대 문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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