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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교양/역사

기원전 5세기 아테네 democracy의 탄생과 페리클레스 시대의 문화혁명

by 지식 발전소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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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는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 있어 민주정의 발전과 문화적 번영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으로 아테네는 세계 최초의 민주 정치 제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를 10개의 부족으로 재편하고, 부족별로 50명씩 총 500명으로 구성된 평의회인 불레를 설치했습니다. 불레는 매일 모여 도시국가 아테네의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평의회 의장은 매일 추첨을 통해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민주정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클레이스테네스는 도편 추방제를 도입하여 참주의 출현을 방지하고자 했습니다. 도편 추방제는 매년 시민 총회에서 6,000표 이상을 얻은 인물을 10년 동안 추방하는 제도로, 정치적 혼란을 막고 민주정을 수호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처럼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 초반, 시민들의 직접 참여와 권력 견제를 통해 민주정의 기틀을 다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정이 진정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기원전 5세기 중반, 페리클레스의 등장 이후부터였습니다. 기원전 461년에 정치 지도자가 된 페리클레스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주도한 해군 강화 정책을 계승하여, 아테네를 강력한 해상 제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동맹국들로부터 막대한 조공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페리클레스는 민주정의 확대에도 힘썼습니다. 그는 재산에 따라 시민의 자격을 제한하던 솔론의 법을 폐지하고, 모든 자유민에게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공직자 봉급제를 확대 시행하여 가난한 시민들도 국가 업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페리클레스는 헬리아이아라는 대규모 민회를 운영하여, 6,000명의 배심원단이 정치인 감시, 탄핵 등의 역할을 수행토록 했습니다. 이러한 개혁을 통해 아테네 민주정은 명실상부한 직접 민주제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이처럼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클레이스테네스와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민주정의 토대를 마련하고, 제도적 완성도를 높여갔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민주주의의 기원을 고대 아테네에서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문화적 번영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는 정치적 민주화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찬란한 꽃을 피웠습니다. '페리클레스의 황금기'로 불리는 이 시기에 그리스 문화는 역사상 유례없는 절정에 올랐습니다.

 

무엇보다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는 건축과 조각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남겼습니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아테네는 이를 바탕으로 도시 곳곳에 웅장한 신전과 공공건물을 세웠습니다. 기원전 447년에 착공된 파르테논 신전은 페리클레스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달리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 신전은 화강암 기단 위에 펜텔릭 대리석으로 지어진 높이 13미터, 길이 70미터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기하학적 비례미와 섬세한 세부 조각이 조화를 이루는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역작이라 할 만합니다.

 

페리클레스는 파르테논 신전뿐 아니라 프로필레아, 에렉테이온, 아테나 니케 신전 등 아크로폴리스의 제단과 신전 건립을 주도했는데, 이는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기리고 도시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오데이온'이라는 원형 극장을 세워 연극과 음악 공연을 활성화하는 등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아낌없는 지원을 펼쳤습니다.

 

조각 분야에서도 페리클레스 시대는 그리스 조각사의 황금기로 꼽힙니다. '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디아스는 파르테논 신전의 세부 조각을 책임졌는데, 그 중에서도 아테나 여신의 상아와 금으로 만들어진 chryselephantine 조각상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손꼽힐 만큼 완벽한 걸작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피디아스의 뒤를 이어 폴리클레이토스, 미론, 프락시텔레스와 같은 거장들은 인체의 이상적 비례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리스 조각을 절정으로 이끌었습니다.

 

문학 분야에서는 기원전 5세기가 그리스 비극의 전성기였습니다. 연극제인 '디오니소스 제전' 때마다 수많은 작품이 발표되었는데, 이들 가운데는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걸작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는 비극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 작품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파네스로 대표되는 고대 희극 역시 이 시기에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철학자들의 활약도 주목할 만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와 앎의 본질을 탐구하며 철학사에 한 획을 그었고, 그의 제자인 플라톤은 이상국가론을 통해 철학과 정치를 결합시키고자 했습니다. 소피스트 운동으로 대표되는 지적 풍토 속에서 자연철학, 수사학 등 다양한 학문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처럼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건축, 조각, 회화, 문학, 철학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창조적 혁신이 이루어진 문화의 황금기였습니다. 특히 페리클레스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서 예술가들은 전대미문의 걸작들을 쏟아냈고,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마련되면서 학문과 사상이 꽃피었습니다. '클래식'이라는 말의 어원이 이 시기 그리스 문화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페리클레스 시대가 남긴 문화적 성취와 가치를 잘 말해 줍니다.

아테네 民主政과 帝國主義의 명암

한편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민주정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문화적 부흥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제국주의적 팽창이 초래한 부정적 유산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가 주도한 델로스 동맹은 점차 아테네의 제국주의 도구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동맹국에 대한 압박과 간섭이 심해지면서, 아테네는 사실상 강대국의 횡포를 일삼는 패권국가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델로스의 금고'를 아테네로 옮긴 것도 제국주의 팽창의 일환이었고, 조공으로 걷은 막대한 자금을 아테네의 건축과 예술에 쏟아 부은 것 역시 약소국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찬란함이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페리클레스 치세 말기에는 아테네 민주정의 한계와 위기도 서서히 불거져 나왔습니다. 페리클레스 사후 니키아스가 이끈 평화파와 클레온으로 대표되는 주전파 간 대립은 아테네 정국의 혼란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기원전 431년에 발발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 민주정의 명운을 걸고 벌어진 대규모 전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테네의 패배로 끝난 이 전쟁은 그리스 세계의 쇠퇴를 가속화했을 뿐 아니라, 민주정 자체를 뒤흔드는 정치적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민주정이 초래한 포퓰리즘의 폐해도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 정치가 직면한 커다란 도전이었습니다. 데마고기(선동 정치인)들은 민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무책임한 정책을 남발했고, 여론 재판은 감정에 호소하는 변론으로 인해 공정성을 잃어갔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 재판은 민주정의 이름으로 자행된 인기영합주의 정치의 폐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민주정은 찬란한 문화적 유산을 남겼지만 동시에 제국주의와 포퓰리즘이라는 정치적 병폐를 낳기도 했습니다. 페리클레스라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이끌어진 직접 민주제는 여러 한계에 봉착했고, 그 와중에 터져 나온 전쟁은 그리스 세계 전체를 쇠락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뿐 아니라 그것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이 남긴 유산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민주정은 인류 역사상 독보적인 정치 실험이자 문화 혁명이었습니다. 비록 당대의 한계와 모순이 있었다 하더라도 고대 아테네가 지닌 역사적 의의만큼은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클레이스테네스와 페리클레스로 대표되는 정치 개혁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놓았고, 이는 이후 서양 정치사상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은 고대 아테네의 정치 제도와 시민 참여 문화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고대 그리스를 첫손에 꼽곤 합니다. 아테네 민주정이 남긴 유산은 정치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주권을 갖는 공적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 즉 민주주의 이념의 핵심을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적 차원에서 고대 아테네가 남긴 유산은 더욱 지대합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꽃핀 예술과 학문은 서양 문화의 뿌리이자 고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으로 상징되는 그리스 건축양식과 조각상, 비극 문학과 철학은 훗날 로마와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사상의 규범으로 영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인간 이성을 통한 진리 탐구, 조화와 균형의 미학은 서구 문명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으로 꼽히는데 이는 모두 고대 그리스, 그 중에서도 아테네의 눈부신 문화적 성취에서 연유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은 정치와 문화의 불가분의 관계를 웅변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지도 아래 꽃핀 민주주의는 예술과 학문의 전성기를 견인했고, 반대로 문화의 융성은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정치 발전의 토양이 되어주었습니다.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학문을 발전시켰듯이 연극제와 같은 시민 축제는 평등한 정치 참여 의식을 강화했습니다. 즉 아테네의 민주정은 정치와 문화가 선순환을 이루며 함께 발전할 때 진정한 번영을 이룰 수 있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교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고대 아테네로부터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문화의 힘을 배웁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시민 모두가 주인이 되는 정치이며, 정치는 시민의 역량과 참여로 완성됨을 고대 아테네는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문화는 인간 삶을 고양시키고 사회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임을, 페리클레스 시대의 찬란한 유산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민주정은 정치와 문화의 이상적 관계에 대한 영원한 모범으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2,5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고대 아테네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민주주의를 가꾸고 문화를 육성하는 것, 그리하여 정치와 문화가 선순환하는 성숙한 공동체를 일구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땅에 실현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는 점입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인간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정치적, 문화적 성취를 이룬 고대 아테네 민주정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등대와도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2천 년의 역사를 관통하여 아테네가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는 영원한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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