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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통치 시기 프랑스 절대왕정의 전성기

by 지식 발전소 202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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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의 탄생과 어린 시절

루이 14세(1638~1715)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국왕으로, 그의 통치 시기 프랑스 절대왕정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는 1638년 9월 5일 생로리 궁전에서 루이 13세 안 오스트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났죠. 당시 프랑스는 왕위 계승 문제로 큰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1610년 앙리 4세가 암살당한 이후 프랑스 왕실은 부르봉 왕가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루이 14세의 아버지 루이 13세가 왕위에 오르자 정통성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는 아버지 앙리 4세가 이단자 위그노 출신이었기 때문이었죠. 이러한 논란 끝에 루이 13세와 리셜리외 추기경은 위그노를 탄압하고 가톨릭 진영을 위무하며 정통성을 확립해나갔습니다.

루이 14세는 불과 5세 때인 1643년 아버지 루이 13세가 서거하면서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였기에 어머니 안 오스트리아 여왕이 섭정을 맡게 되었죠. 안 오스트리아 여왕은 생텍스 공작 마자렑을 섭정 수행 총리로 삼아 정사를 돌보게 했습니다.

프롱드 난동 마자렑의 섭정 정치로 인해 어린 시절을 불안정한 환경에서 보냈지만, 성장과 더불어 점차 왕실 권력을 장악하며 절대 왕정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실제로 22세가 되던 1661년에는 모든 권력을 자신의 수중에 넣고 개인 왕정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중상주의 정책과 군주 권위 확립

루이 14세는 집권 이후 국가 재건과 왕권 강화를 위해 중상주의 정책을 적극 펼쳤습니다. 군주의 절대 권력을 확립하고자 각종 정책들을 내놓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부역과 신분제의 영구화였죠.

1661년 그는 왕립 국방군을 설치했습니다. 이는 봉건 영주들에 의지하던 군대 조달 방식에서 탈피, 국가 직속의 상비군을 두게 된 것이었죠. 1663년에는 향리 의회를 소집해 전국의 관직을 매매하도록 했고, 1669년엔 귀족이 아니어도 관직을 살 수 있게 관직 매매법을 제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왕권 강화와 국가 재정 확충을 꾀할 수 있었습니다.

세금 개혁을 통해 재정 기반도 다졌습니다. 1663년 무렵 콜베르라는 재능 있는 재정가를 발탁해 새 세제를 마련토록 했죠. 그의 주도로 부가가치세 제도가 도입되었고, 왕권에 대한 도전을 방지하고자 망궃세와 같은 새 조세도 신설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루이 14세는 절대 군주권을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베르사유 궁전 건설을 통해 왕권의 권위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1661년 착공해 1710년 완공된 베르사유 궁전은 궁전 건립과 관리에만 약 200억 프랑(현재 약 2조 원)이 투입되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사비가 들었습니다. 궁전 내부는 금박과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꾸며졌고, 정원 조성에도 많은 공력을 기울였죠. 이는 국가 재정 낭비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황제의 궁전이라는 상징성을 과시함으로써 군주권을 높이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루이 14세의 이러한 일련의 정책과 조치들은 하나의 목표, 즉 중앙 집권화된 강력한 절대 군주제 확립을 향했습니다. 그는 봉건 영주들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권위를 높여 프랑스 전역을 통치하는 강력한 절대 군주가 되고자 했던 것이죠.

산업과 무역 육성을 통한 국가 부강

국가 운영을 위해서는 재정적 기반이 필수적입니다. 루이 14세는 국가 재정 확충을 위해 산업과 무역 육성에도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탁월한 재정가 콜베르를 적극 기용했는데, 그의 정책으로 인해 프랑스는 경제적으로 크게 부흥할 수 있었죠.

콜베르는 1600년대 후반 **'대 및제'**라는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는 보호 무역주의를 실시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수출품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국내 산업 보호와 국산품 수출 장려를 통한 무역수지 개선을 도모한 것이죠.

특히 제조업 육성에 힘썼습니다. 왕립 제조 공장을 설립하고 견직물, 유리, 철강, 시계 등 12개 산업에 정부 자금을 직접 투자해 기술 발전을 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정가와 군인 등 고위 관리들에게 특정 품목의 제조업을 인수토록 강요하는가 하면, 해외 우수 기술자들을 초빙해 기술 전수를 받기도 했죠.

이와 함께 해외 진출과 식민지 개척에도 박차를 가했습니다. 북미 대서양 연안의 아카디아(현 캐나다 동부 지방)와 루이지애나 지방을 식민지화했으며, 카리브해 마르티니크 섬 등에도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해외 식민지들은 본국으로 고부가가치의 식민지 특산물을 보낼 수 있게 했죠.

그리고 프랑스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주도 아래 해외 무역과 투자, 식민지 개척을 전담하는 독점 회사였죠. 또한 국내 운하와 도로 건설에도 힘써 교통망을 정비하고 무역과 상업 활동을 촉진시켰습니다.

콜베르의 중상주의 정책은 산업과 무역을 육성해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고, 프랑스를 강대국으로 부상시키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전반적인 경제 활성화로 부유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절대 왕정도 안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외 정복 정책과 군사력 증강

집권 초기에 있었던 종교 전쟁 등으로 재정이 고갈되자, 루이 14세는 국가 재건과 위상 제고를 위해 대외 영토 확장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군사력 증강에도 힘썼죠.

1672년 그는 네덜란드와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 네덜란드 전쟁은 비교적 쉽게 승리할 수 있었지만 막대한 전비가 들었습니다. 1683년부터는 에스파냐의 영토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스페인 계승 전쟁(1701~1714)이 일어나기도 했죠. 하지만 결국 프랑스는 스페인의 식민지 일부만 차지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 외에도 그는 신성 로마 제국,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 거의 모든 유럽 강대국들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영토 확장과 정복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였죠. 그런데 여기에는 상당한 전비가 소모되었고 전쟁의 상처도 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전쟁을 통해 그는 강력한 정규 육군을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 유능한 장군 비유빌과 튀렌을 기용해 당대 최강의 지상군을 보유하게 되었죠. 또한 콜베르의 노력으로 해군력도 상당히 증강되어, 전성기 때 프랑스 해군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루이 14세의 정복 정신과 군사력 증강 노력은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유럽에서 프랑스가 최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이 시기에 국가 부강과 영토 확장이라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죠.

문화와 예술의 전성기, 루이 14세 시대의 상징

루이 14세 시기 프랑스는 정치,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을 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도 최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건립은 그 상징적 사례라고 할 수 있죠.

궁전 내부는 금박으로 치장되었고, 화려한 대리석과 벽화로 꾸며져 웅장한 모습을 자랑했습니다. 대규모의 정원과 분수대, 조각상도 조성되어 궁전의 장엄함을 더했죠. 특히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 14세는 정원에 방사상으로 조성된 길과 함께, 자신을 태양에 빗대 상징화하고자 했습니다.

궁전 건립에는 무려 3만 6천여 명의 인부와 1만여 명의 병사가 동원되었고, 총 공사비로만 약 2억 리브르(현재 가치 약 2조 원)가 투입되었습니다. 이는 국가 재정 낭비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프랑스 절대왕정의 절정기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은 단순한 왕실의 거주지를 넘어, 프랑스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궁전 내에서는 다양한 예술 활동과 공연이 펼쳐졌는데, 연극, 오페라, 발레 등의 공연이 열렸고 궁정 예술가들이 활동했죠.

물론입니다.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 전성기에 대해 계속 서술하겠습니다.

아니라 궁전 내에는 수많은 조각가와 건축가, 정원 설계가 등이 고용되어 활동했죠. 특히 베렌, 르 브린, 르노 등의 건축가와 르 노트르 정원 설계가가 베르사유 궁전 건축과 정원 조성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궁전에서는 예술가들뿐 아니라 수많은 학자와 철학자, 과학자들도 활동했습니다.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를 연 데카르트를 비롯해 파스칼, 라브루아예르, 몰리에르, 보슈에 등이 활약했죠. 루이 14세는 이들 지식인들을 후원하고 예술인들의 활동을 지지했습니다.

1635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가 설립되어 언어와 문학 발전에 기여했고, 1666년에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세워져 자연과학 발전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과학 아카데미에는 데카르트의 제자 파스칼이 설립에 참여했고, 뉴턴의 대척점에 서있던 라이프니츠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활동했죠.

또한 궁정 문화가 꽃피면서 사교 예절과 의례, 패션과 음식 문화도 발달했습니다. 궁정 예법서와 상식집이 나왔고, 궁정 댄스가 유행했으며 궁정 복식과 가발 문화도 유래했죠. 귀족들의 우아하고 화려한 궁정 문화가 꽃피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루이 14세 시대는 베르사유 궁전을 중심으로 문화와 예술이 궁극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궁전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천재성이 꽃피운 곳이자, 궁정 문화가 발달한 중심지였죠. 루이 14세는 후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프랑스 문화와 예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었습니다.

계몽사상의 태동과 혁명의 여운

하지만 전성기 시대라 할지라도 부작용 없이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절대 군주제 강화, 부역 및 신분제 영구화, 대외 정복 전쟁과 무기 경쟁 등 여러 정책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점차 궁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 건립과 루이 14세의 방만한 궁정 생활로 막대한 돈이 허비되면서, 재정 고갈은 가속화되었죠. 게다가 오랜 전쟁으로 국민들의 고통도 가중되었습니다. 이에 봉건 영주들과 시민층에서는 왕정에 대한 불만이 점차 높아져갔습니다.

18세기 들어 계몽사상이 프랑스에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왕정 비판 여론도 거세졌습니다.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디드로 등의 계몽사상가들이 왕권 신수설과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들었죠. 그들은 이성에 바탕한 개혁과 인간 평등, 시민의 자유와 권리 등을 주창했습니다.

결국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왕정 체제는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루이 14세 시대의 절대 왕정 전성기는 그 끝에 이르러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버린 것이죠.

실제로 프랑스 혁명의 주역들 다수가 루이 14세 시대의 계몽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절대 권력과 신분제에 반발하며 부르주아 혁명을 주도했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신장을 내세웠죠. 이렇듯 혁명에는 계몽사상과 더불어 루이 14세 통치 시대의 전제 정치에 대한 반발심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평가와 시사점

루이 14세 통치 시기는 프랑스 역사상 찬란한 전성기를 누린 시기였습니다. 강력한 절대 군주권 확립, 콜베르의 중상주의 정책으로 인한 경제 부흥, 영토 확장과 군사력 증강, 궁전 중심의 문화·예술 르네상스 등으로 프랑스는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전성기를 맞이했죠.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전쟁과 왕권 견제를 위한 억압 정치, 호화 방만한 궁정 생활로 국가 재정이 고갈되고 민중의 불만이 커져갔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발아한 계몽사상은 결과적으로 왕정 체제 붕괴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루이 14세의 치세는 왕권의 정점과 몰락이 교차하는 시기였습니다. 화려한 전성기 이면에는 이미 체제 모순과 민중의 저항의식이 발아하고 있었던 것이죠. 비록 왕정이 몰락했지만, 이 시대는 문화와 예술의 전성기라는 점에서 프랑스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현대에 와서도 이 시기는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국가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과 정책이 필요하지만, 지나친 권력 집중과 일방적 통치는 부작용만 낳는다는 점입니다. 또한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식인들에 대한 후원과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는 순환하는 법입니다. 과거의 치부와 영광을 직시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루이 14세 시대야말로 그 과정에서 값진 교훈을 주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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