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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혁명의 배경 - 왕권과 의회 간 대립
17세기 영국에서는 왕정과 의회 간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었습니다.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 1세(재위 1603~1625)와 찰스 1세(재위 1625~1649)는 전제 군주권을 더욱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의회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특별 세금을 부과했으며, 성직자법과 같은 특별법을 남발하며 권력을 남용했습니다.
찰스 1세는 애초에 의회를 11년 동안 한 번도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윌리엄 램프(William Laud) 주교와 함께 영국 국교회를 장악하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스코틀랜드 교회에 영국 국교회 예배 의식을 강요했습니다. 이에 스코틀랜드에서는 감독국 폐지 동맹(Solemn League and Covenant)이 결성되어 반발했고, 영국 의회 역시 왕권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의회파와 왕당파 간의 대립은 결국 영국 내전(1642~1649)으로 이어졌습니다. 존 햄프덴(John Hampden)과 존 프린(John Pym) 등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는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 이끄는 새로운 모델 군대의 전투력을 등에 업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크롬웰은 찰스 1세를 체포하여 반역 혐의로 처형했고(1649년), 공화정을 선포하며 로드 프로텍터(Lord Protector)라는 직함으로 통치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크롬웰이 사망한 후 혼란이 가중되자,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왕정 체제를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왕정 복고와 명예혁명의 전개
크롬웰 사후 찰스 2세(재위 1660~1685)가 즉위하며 왕정이 부활했습니다. 그러나 찰스 2세 역시 전제적 통치 성향을 보이자 의회와 대립했고, 제임스 2세(재위 1685~1688) 역시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국민의 신임을 잃었습니다.
이에 영국 의회는 윌리엄 3세(William of Orange, 재위 1689~1702)와 메리 2세(재위 1689~1694)를 새로운 공동 국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이를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of 1688)'이라 부릅니다.
명예혁명은 무력 혁명이 아닌 평화로운 방식의 정권 교체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의회는 권리 청원(Bill of Rights)을 제정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받았고, 왕권 역시 헌법에 의해 제한되는 입헌군주정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명예혁명의 성과는 권력 분립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있습니다. 의회는 입법권을 장악했고 재무권, 사법권 등도 상당 부분 의회의 권한으로 넘어갔습니다. 군주는 의회의 승인 없이 법률을 제정할 수 없게 되었고, 징세와 상비군 유지 등에서도 의회의 승인이 필요해졌습니다.
영국의 입헌군주정 체제와 의의
입헌군주정(Constitutional Monarchy)은 군주 권력이 헌법에 의해 제한되고 의회가 입법권을 갖는 정치 체제를 말합니다. 영국은 명예혁명과 권리 청원 제정을 통해 이러한 체제를 수립했습니다.
권리 청원에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회 동의 없는 과세 금지, 상비군 유지를 위한 의회 승인 필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한 왕권 신수설이 약화되면서 통치 정당성의 근거가 신성한 왕권에서 국민의 동의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존 로크(John Locke)의 '통치권 동의설'은 이러한 관념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통치 권력이 국민의 동의에서 비롯되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권력 분립' 원리를 제시하여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체계화되었습니다.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을 분리하고 서로 견제하도록 함으로써 권력 집중과 전제주의를 방지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의회 민주주의의 기원
입헌군주정 체제 확립은 근대 민주주의의 발아가 되었습니다. 의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구로 자리잡았고, 점차 권한이 강화되면서 국정 운영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의회에 대표권이 제한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진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832년 선거법 개정으로 중산층 남성의 참정권이 확대되었고, 1867년과 1884년에는 노동자 계층 남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습니다. 1918년에는 30세 이상 여성에게, 1928년에는 21세 이상 성인 남녀 모두에게 보통선거권이 부여되었습니다.
영국의 정치 체제는 다른 유럽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정 체제와 '국민주권' 원리가 확립되었고, 미국 독립혁명과 헌법 제정으로 대의제 민주공화국이 탄생했습니다.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와 확산
19세기 이후 민주주의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 주권과 기본권 보장, 권력 분립, 평등권, 보통선거권 등의 원칙이 제도화되었고, 이는 현대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다만 초기에는 제한적 민주주의에 머물렀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참정권은 재산, 성별, 인종 등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여되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노동운동, 여성운동 등 각종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민주화가 진전되었고, 보통선거권이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20세기 들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체제가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의 요구로 참정권이 대폭 넓어졌고,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되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식민지 해방과 더불어 신생독립국가들도 민주주의를 채택하면서 민주주의는 전 세계적인 보편 가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과제와 한계
현대에 이르러 민주주의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입니다. 국민과 대표 간의 괴리, 정당 독점과 카르텔화, 기득권 세력의 정치 과점 등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등 국민 직접 참여 제도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둘째, 다수결 원리에 따른 소수자 권리 침해 문제입니다. 다수결의 원리로 인해 소수 집단의 기본권과 자유가 침해될 수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권리 장전 제정, 소수자 할당제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셋째, 세계화와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민주주의 모델 정립의 필요성입니다. 국가 간 상호의존성 증대,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 확대, 인터넷과 SNS를 통한 여론 형성 등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야 합니다. 지구촌 차원의 거버넌스 구축, 전자직접민주주의 도입 등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발전의 지속과 전망
명예혁명은 근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지만, 완성된 체제는 아니었습니다. 국민 주권과 기본권 보장의 이념 아래에서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민주주의는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도전과 과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대의제 한계 극복, 소수자 권리 보장, 정치 권력 집중 방지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국민 주권, 자유와 평등, 기본권 보장 등의 이념은 지속될 것입니다. 국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권력이 국민의 손에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입니다. 이러한 이념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한 고대 문서 이야기
여기 한 고대 문서가 있습니다. 이 문서는 B.C. 1,500년 부터 A.D 100년까지 약 1,600 여 년 동안 기록되었습니다. 이 문서의 저자는 약 40 명입니다. 이 문서의 고대 사본은 25,000 개가 넘으나, 사본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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