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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교양/역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에스파냐·포르투갈의 식민지 개척

by 지식 발전소 202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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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대항해와 신대륙 발견

1492년 8월 3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라 1세의 후원을 받아 신항로 개척을 위해 대항해에 나섰습니다. 콜럼버스는 니냐호, 피타호, 산타마리아호 등 3척의 배를 이끌고 대서양을 횡단하여 같은 해 10월 12일 바하마 제도의 산살바도르섬에 도착했습니다.

콜럼버스는 당초 서쪽으로 항해하면 아시아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가 발견한 곳은 유럽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신대륙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이 아시아의 동쪽 끝이라 생각하고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 불렀습니다. 콜럼버스는 이후 1493년부터 1504년까지 3차례에 걸쳐 항해를 계속했고, 카리브해 연안과 중앙아메리카 등 신대륙 각지를 탐험했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무역로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지리적 지식을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적극적인 海外 진출에 나서면서 유럽의 역사는 물론 전 세계 역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과 신대륙 분할

콜럼버스에 이어 신대륙 탐험에 나선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곧 신대륙을 둘러싼 영토 분쟁에 휩싸였습니다. 이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1493년 두 나라 사이의 세력권을 구분하는 교황령을 선포했고, 1494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하여 대서양을 분할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 위치한 카보베르데 제도에서 서쪽으로 370레구아(약 1,770km)의 자오선을 그어 그 동쪽은 포르투갈의 세력권으로, 서쪽은 에스파냐의 세력권으로 정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에스파냐는 신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포르투갈은 브라질의 동부 일부를 차지했습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해외 진출에 교황의 정통성을 부여했으며, 양국은 이를 근거로 아메리카와 아시아 등에 적극적으로 진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스테카, 마야, 잉카 등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문명이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신대륙은 에스파냐의 주요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에스파냐의 멕시코 정복과 잉카 제국 정복

1517년 에스파냐 원정군 에르난 코르테스가 쿠바섬을 출발하여 멕시코로 향했습니다. 코르테스는 토토나크 부족과 연합하여 1521년 아스테카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하고 멕시코를 정복했습니다. 이로써 멕시코는 에스파냐령 누에바에스파냐(신에스파냐)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코르테스의 정복으로 아스테카 문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은 토착 종교를 말살하고 가톨릭을 강요했으며, 에스파냐 문화를 정착시키려 했습니다. 또한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했고, 이로 인해 원주민 인구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1532년에는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의 아타왈파 황제를 생포하고 잉카를 정복했습니다. 잉카 제국은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고 잉카 문명도 파괴되었습니다. 피사로는 에스파냐령 페루 부왕령을 수립했고, 에스파냐는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까지 진출하여 막대한 금과 은을 가져갔습니다.

에스파냐의 정복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 막대한 위기와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에스파냐 제국은 정복지에서의 지배를 공고히 했지만, 현지인에 대한 가혹한 수탈과 억압이 뒤따랐습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 등 각종 질병은 원주민들의 대량 사망을 초래했고, 수많은 원주민이 에스파냐인 농장에서 강제 노역을 해야 했습니다.

포르투갈의 동방항로 개척과 향신료 무역

포르투갈은 신대륙으로 진출한 에스파냐와 달리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항로를 개척했습니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했고, 이듬해 카브랄이 브라질에 상륙했습니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동방항로를 개척하고 인도양 일대를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 전반 포르투갈은 페르시아만에서 말라카 해협에 이르는 주요 무역항에 근거지를 마련했고, 향신료 무역을 주도했습니다. 1511년에는 말라카를 점령하여 동남아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장악했습니다. 같은 해 포르투갈은 중국과 첫 교역을 시작했고, 1557년에는 마카오에 식민지를 세웠습니다.

한편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 규슈에 도착하면서 포르투갈은 일본과도 교역을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은 중국의 비단을 일본에 팔고 일본의 은을 수입하는 '나가사키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또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일본에 건너가 포교활동을 펼쳤습니다.

포르투갈은 이처럼 인도양-태평양을 잇는 광대한 무역망을 구축하고 동양의 향신료와 비단, 도자기 등을 유럽에 공급했습니다. 동방항로 개척으로 지중해 무역이 쇠퇴하고 대서양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무역 독점은 오래가지 못했고, 16세기 후반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 등 새로운 해양 강국이 부상하면서 차츰 영향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대항해 시대의 세계사적 의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에스파냐, 포르투갈의 해외 진출은 유럽 국가들의 세계 정복 경쟁을 본격화했습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이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도 신대륙과 아시아로 진출했고,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많은 지역이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지구는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콜럼버스 항해 이전까지 단절되었던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간에 교류가 시작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는 문물 교류와 경제 발전을 가져왔지만, 한편으로 토착 문명의 파괴, 노예무역의 확산 등 부정적 결과도 낳았습니다.

이 시기 막대한 양의 금, 은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크게 번영했습니다. 또한 남미에서 건너간 감자가 유럽인의 식단에 혁명을 일으켰고, 아시아의 향신료는 유럽 요리의 맛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담배 등 기호식품의 전파도 이루어졌습니다.

대항해 시대는 유럽 중심의 근대 세계 질서 형성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해양 강국들이 전 세계로 팽창하고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산업혁명으로 이어져 서구의 근대화를 추동했고, 오늘날 세계화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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