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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교양/역사

고지 탈환 작전의 첨예한 대치, 과달카날의 그 격전지

by 지식 발전소 2024.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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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능선: 과달카날 고지 탈환 작전

1942년 8월, 남태평양의 작은 섬 과달카날. 푸른 바다와는 대조적으로 섬 내부는 뜨거운 화염에 휩싸였다. 미 해병대가 일본군을 몰아내고 헨더슨 비행장을 점령하면서 시작된 이 전투는, 태평양 전쟁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특히 섬 중앙에 우뚝 솟은 고지들은 그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양측 군대의 끈질긴 혈투의 장이 되었다.

"피의 능선"의 악몽, 에드슨 고지 전투

미군에게 '블러디 릿지(Bloody Ridge)', 우리에게는 '피의 능선'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은 해발 고도 100m 남짓한 작은 고지였다. 하지만 이곳은 헨더슨 비행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천혜의 요새였기에 일본군에게는 반드시 탈환해야 할 목표였다. 1942년 9월, 일본군은 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맹렬한 야간 공격을 감행했다. 미 해병 1사단 소속 에드슨 중령이 이끄는 병력은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필사적으로 방어선을 사수하며 일본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피의 능선 전투는 백병전과 수류탄이 난무하는 처절한 전투였다. 어둠 속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힘들었고, 피아가 뒤섞여 서로 뒤엉켜 싸우는 혼란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3일 동안 이어진 치열한 전투 끝에 일본군은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고, 미군은 가까스로 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약 200명, 일본군은 3배가 넘는 85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끊이지 않는 공방전: 과달카날 전역의 고지전

피의 능선 전투 이후에도 과달카날에서는 고지를 둘러싼 뺏고 뺏기는 혈투가 계속되었다. 일본군은 10월에도 '해군 준장 이케다 추이치 소장'의 지휘 아래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그들은 헨더슨 비행장을 향해 진격하기 위해 미군 방어선의 핵심 거점인 '유타', '오스틴' 고지 등을 연이어 공격했다.

미군은 압도적인 일본군의 화력과 병력에 맞서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특히 포병대의 정확한 포격 지원은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도 미군 병사들은 참호를 파고 끈질기게 버텼다.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일본군의 공세를 또다시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승리의 기반: 고지전의 의미와 그 이후

과달카날의 고지전은 험준한 지형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펼쳐진 잊을 수 없는 전투였다. 이 전투들은 단순한 고지 쟁탈전을 넘어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과달카날에서의 승리로 미군은 남태평양 지역에서의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고지전의 승리 요인에는 미군의 해상 전력 우위, 효과적인 포병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숨을 걸고 싸운 병사들의 용맹함과 희생정신이 있었다. 반면 일본군은 보급 부족과 미흡한 전략, 그리고 무리한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과달카날 전투 이후, 일본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고 연합군은 반격을 본격화하며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잡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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